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의 공통점: Secret KPI
일을 하다 보면 한 번쯤 방향을 잃고 헤매는 순간을 겪게 됩니다. 여러 사람의 조언과 의견이 동시에 쏟아지고, 무엇을 기준으로 움직여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해질 때도 있습니다. 또는 열심히는 한다고 생각하는데 살짝 불안해 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나만의 KPI는 무엇일까. 그리고 무엇을 해냈을 때 나는 나를 인정하고 만족할 수 있을까 하고 말입니다.
Secret KPI는 누가 정해주는 KPI가 아닙니다. 조직이 요구하는 성과 지표도, 타인이 기대하는 모습도 아닌, 오롯이 내가 스스로 정하는 목표입니다. 일반적으로 KPI는 수많은 지표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과 지표를 의미하며, 조직이나 개인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방향을 잡아주는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저는 이 개념을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수많은 기준 중 단 하나, ‘이것만 해낸다면 나는 나 자신에게 만족할 수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 그것이 제가 말하는 Secret KPI입니다.
이러한 KPI는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도, 인정받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습니다. 남의 인정에 기대기 시작하면,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때 쉽게 흔들리고 불안해지며, 어느새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게 됩니다. 나 대신 다른 누군가가 인정을 받으면 마음 한편이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가 나를 먼저 인정할 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그 결과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고 소중하며,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됩니다.
저의 첫 Secret KPI는 아주 소박한 것이었습니다.
대학 시절, 공업수학은 저에게 정말 버거운 과목이었습니다. 월요일 1교시, 수요일 1교시, 금요일 1교시, 거기에 연습은 금요일 9교시까지. 시간표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수업 내용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하위 20퍼센트는 예외 없이 F라는 조건까지 더해지니 부담은 더욱 컸습니다. 결국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전의를 상실하고 수강을 철회한 뒤 계절학기를 선택했습니다. 여름철 에어컨도 없는 강의실에서 버티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이거 F받으면 어떻게 하나하는 걱정이 가득했습니다. 그때 제가 세운 목표는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A가 아니라 D를 목표로 하는것, 그것이 저의 Secret KPI였습니다.
시험을 치르고 받아든 성적은 D였고, 그동안 받아왔던 수많은 A보다도 그 공업수학 D가 훨씬 더 기뻤습니다. 그 순간 저는 나만의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에 따라 성취의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체감했습니다. 남들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결과였지만, 저에게는 분명한 성공이었습니다.
페이스북에 도전했을 때도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IT 분야에는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생각했지만, Adtech 업계는 전혀 다른 세계였고 회의에서 오가는 이야기조차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동규님, 요즘 뭐 하고 계세요?”라는 질문에 선뜻 답하지 못하던 어느 날, 아, 내가 지금 헤매고 있구나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목표를 아주 작게 다시 설정했습니다. 6개월 안에 스스로 준비해서 파트너를 대상으로 발표를 할 수 있는 수준이 되자, 1년 안에는 전략 파트너 두 곳을 만들어보자,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임팩트 있는 프로그램 하나를 실행해보자고 말입니다.
기대를 낮추고 한 걸음부터 시작하자, 제 자세와 마음가짐이 조금씩 안정되기 시작했고, 주변에서 어떤 이야기를 하든 일단 제 페이스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기만의 페이스인 것처럼, 일에서도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에게 맞는 기준을 세우고 그 리듬을 유지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달려도 안 되고, 지나치게 느리게 가도 안 되지만, 결국 핵심은 나에게 맞는 페이스를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바로 Secret KPI를 정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2년 차, 3년 차가 되면서 새로운 기준과 함께 성과가 나기 시작했고, APJ 파트너 팀에서 두 번의 어워드를 연속으로 받으며 승진이라는 결과도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이후 AWS에서 일할 때는 조금 더 높은 기준을 세우기 시작했습니다. 단순히 회사의 숫자를 맞추는것을 넘어, 저의 Secret KPI는 1년에 장기 계약 네 건을 성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목표였지만, 스스로 정한 기준이었기에 더 집요하게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연초부터 서둘러 고객께 소개하고, 제안하고, 설득하며 결국 연말에 가서는 네 건의 큰 장기 계약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큰 보너스도 물론 의미 있었지만, 그보다 장기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성과로 이어갈 수 있었다는 점이 저에게는 더 큰 만족이었습니다.
Secret KPI는 남들이 의미 없다고 말해도 괜찮고, 별거 아니라고 평가해도 상관없습니다. 왜 그런 걸 하느냐고 묻더라도, 내가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이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을 달성했을 때 내가 나를 인정해 주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만족이고 성장의 출발점이라고 믿습니다.
꼭 회사와 관련된 KPI일 필요도 없습니다. 가족, 주변 친구, 취미, 투자처럼 스스로 정하고 도전해볼 수 있는 기준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올해 저에게도 몇 가지 Secret KPI가 있었습니다. 파트너사 네 곳을 프리미어 파트너로 만드는 것, 스타트업 분들을 대상으로 어드바이징을 하는 것, 그리고 코칭 관련 교육을 이수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것은 도전적이었고, 어떤 것은 아주 쉬워 보이기도 했지만 기준은 제가 정하면 되는 일이었습니다. 작고 소박해 보여도, 나에게 의미 있는 목표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2026년을 앞두고, 다시 한 번 저만의 Secret KPI를 세워봅니다.
![]()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