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 가기 싫은 이유
예전에 페이스북에서 일할 때, 국내 대행사 분들이 종종 이런 걸 물어보셨습니다.
"페이스북은 출퇴근이 자유롭나요?"
생각해보니 저도 출퇴근 시간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다녔습니다. 아침 9시에 출근해도 사무실에 사람이 별로 없었거든요. 가끔 밤새 일한 분 한 명 빼고는요 ^^; 그래도 서로가 어디서든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신뢰는 확실히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제가 다녔던 IT 회사 중엔 사무실이 너무 좁아서 전화 한 통 하기도 눈치가 보이는 곳이 있었습니다. 의자를 조금만 뒤로 밀어도 뒷사람과 부딪히고, 대화도, 움직임도, 숨 쉴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페이스북은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책상은 넓었고, 사람 사이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대표님 자리는 사무실 한가운데, 직원과 똑같은 크기의 책상에 파티션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올핸즈 미팅에서 누군가 손을 들고 물었습니다. "대표님과 대화하고 싶은데, 자리에 자주 안 계십니다." 대표님 대답은 이랬습니다. "여러분처럼 저도 바쁩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1:1 미팅을 잡으세요."
대표님도 잘 안 보이고, 직원들도 잘 안 보였습니다. 그런데 회사는 잘 돌아갔습니다. 오히려 어느 때보다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그때부터 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왜 글로벌 테크 회사들은 공간에 여유를 두고, 먹을 것도 넉넉히 주고, 직급 호칭을 없애고, 파티션을 걷어내는 걸까?
저는 이게 단순한 '복지'나 '분위기'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몰입", 즉 에너지의 문제입니다.
사람이 하루에 쓸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에너지를 어디에 쓰느냐가, 결국 개인과 조직의 퍼포먼스를 결정합니다.
우리는 출근하기도 전에 이미 에너지를 상당히 소모합니다. 비 오는 날 지하철, 꽉 막힌 버스, 늦지 않으려 뛰는 아침. 그렇게 지쳐서 회사에 들어와도 또 시작됩니다. 오늘 사장님 기분은 어떤지, 이메일 폰트는 맞는지, 회의에서 의견을 냈다가 괜히 덤터기 쓰는 건 아닌지. 매사에 조심조심, 혹시 튈까봐, 흠잡힐까봐.
실제로 눈치를 볼 때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다고 합니다. 저도 그런 환경에선 회사에 나가기가 정말 싫었습니다.
멘토링하던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준비해서 클라우드 회사에 입사했는데, 막상 이메일 폰트, 색상, 글꼴 맞추다 하루가 다 갔다고 하더군요. 형식적인 것에 에너지를 쏟다 보니 정작 일에 집중할 여력이 없었던 겁니다.
코로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꼈습니다. 지각 걱정 없이, 눈치 볼 사람 없이, 편한 자리에서 일하니 오히려 생산성이 높아졌다고. 에너지를 온전히 일에 쏟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좋은 환경이 에너지를 끌어올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 인턴은 6개월 인턴 기간이 짧게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팀 회의에서 의견을 내면 한번 해보라고 응원해 주시고, 같이 도와주시니까 너무 재미있었어요"라고 했습니다. AWS 인턴이 일이 적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업계에서 손꼽힐 만큼 많은데도요. 또 다른 팀원은 "AWS ISV팀은 사람 스트레스 없이 일만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했습니다. 서로 신뢰하고 돕는 문화가 오히려 에너지를 높인 겁니다.
물론 적당한 긴장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긴장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야구 선수들도 늘 선배들이 말하지 않습니까. "긴장하지 마라, 편하게 던져라." 긴장하면 오히려 평소 기량의 반도 못 냅니다. 오히려 편안한 상태의 선수가 극한의 압박에서도 실력을 발휘합니다.
결국 글로벌 회사들이 공간, 시간, 인테리어, 수평적 문화에 공을 들이는 건, 직원들이 가진 에너지를 쓸데없이 낭비하지 않고 일에 몰입하도록 하기 위한 전략입니다.
반가운 건, 최근 국내 스타트업들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내 카페, 파스텔톤 소파, 파티션 없는 오픈 스페이스. 글로벌 테크 회사들의 공간 철학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꼭 덧붙이고 싶습니다.
공간이 바뀌어도, 눈치 문화가 그대로라면 직원들의 에너지는 여전히 같은 곳에서 샙니다.
어쩌면 최고의 회사 복지는, 눈치 보지 않고 스마트하고 겸손한 동료들과 몰입해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닐까요.
직원이 회사에 가기 싫다면, 복지 패키지를 늘리기 전에 먼저 이 질문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직원들은 지금 몰입해서 일하고 있는가?"
그리고 개인으로서도 한번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나는 지금 내 에너지를 원하는 일에 온전히 쓰고 있는가, 혹은 어디서 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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